손연우 (대한의료정책학교 정책전문가과정 1기, 의대생)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속, 대한민국은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민 통합이라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 방향성이 매우 중요할 것이며, 전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년에게 기회와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년에게 기회와 희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사회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청년세대는 미래의 고갈된 재정에 대한 불안과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일어난 의료 붕괴 정책의 일환이었던 의대 증원을 전면 재검토하여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접근성을 자랑하는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현 의료 세태에서는 급여 항목의 수가가 전반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다 보니, 본인 부담금은 적고 건강보험 공단 측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환자들의 의료 이용은 과도하게 일어나고, 의사들은 박리다매 방식의 병원 운영을 해야만 간신히 적자를 면할 수 있어, 이는 곧 진료의 질 저하와 환자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의료의 공급을 늘리는 것은 의료 이용량을 늘리는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 붕괴를 가속할 수 있다.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발생할 방만한 의료 이용은, 결국 미래 세대가 보험료만 납부하다가 정작 의료를 이용해야 할 연령이 되었을 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미래를 착취하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청년의 기회와 희망을 논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권 정당이 된 민주당과 좌우통합의 책임을 맡게 된 이재명 정부가, 보험 공단의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집권 사후,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위했던 정부, 여당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이재명 정부는 국가 주도의 Mega-AI 클러스터 구축, 국민펀드를 바탕으로 한 100조 원 규모의 AI 분야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활용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의사 1인당 진료 능력은 대폭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추계위법이 통과됨에 따라 보정심은 의사 양성 규모에 대한 추계위의 심의 결과를 존중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의사 양성 규모에 대한 과학적 추계를 함에 있어,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과 연계하여 의료 분야에서의 AI 활용도 및 이에 따른 의사의 진료 능력 향상을 고려한 추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전 정부가 추진한 의료 붕괴 정책에는 제2의 단통법이라고도 불리는 실손 보험 개악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전 정부에서 출범한 의료개혁특위에서는 초기 실손보험의 자기 부담 범위를 확대하는 약관 변경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였다. 계약에서 약정한 내용의 변경 가능성을 따로 약정해 놓지 않은 한, 일방이 계약 내용을 변경했다면서 원래 약정한 내용을 따르지 않는 것은 원칙적으로 채무 불이행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정부 차원에서 법적으로 가능하게끔 하는 것은, 사적 자치에 의해 발생한 권리를 보호한다는 시장과 법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자, 시장과 법치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를 참칭하던 전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친시장 정책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전 정부는 실손보험으로 인한 의료 수요의 증가를 시장 왜곡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정 비급여 항목에서 보험사의 예상보다 의료 이용량이 많다고 하여 이를 ‘과잉 이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보험의 손익구조에 대한 오해이자,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의료 공급자, 소비자, 보험사의 손익을 특정 항목에서만 따진 다음, 보험사의 예상보다 이용이 많다는 이유로 비급여가 과잉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시장 참여자인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가 자발적으로 계약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에게 효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험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소비자의 미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수요 구조가 일부 조정된다 하더라도, 이는 시장의 왜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장 참여자 전체의 효용과 시장의 전체적 효율성을 증진하는 작용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만약 보험으로 인해 수요 구조가 변화한 시장을 ‘왜곡된 시장’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금융자본주의의 기본적 메커니즘이자, 현대 자유시장경제에서 핵심적 소임을 맡는 보험 및 금융상품의 기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급여 항목의 가격과 보상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은 곧 급여 항목의 수가가 과소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역으로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급여 수가 체계 전반의 개편 필요성을 시사하며, 비급여 항목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는 원가보전율 70% 수준의 낮은 수가를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또 이전 정부에서 정부가 여태껏 저수가로 인한 기피과 현상의 한 측면이었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을 의대 정원 문제로 둔갑시켜 온 것을 생각한다면, 국민의 과도한 의료 이용으로 인해 건보가 고갈되고 있다며 실손 개악을 추진한 것은 자가당착이다. 의대 정원이 부족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면, 즉 의료인 공급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다면, 국민의 과도한 의료 이용은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과도한 의료 이용과 기피과 현상은, 저수가라는 원인으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
다음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의 의미를 정의함에 있어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라고 풀이한 바 있다. 의료, 특히 의료인력 내 직역 간의 갈등 및 조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큰 의미의 통합이 절실해 보인다. 현재 여당이 된 민주당의 김윤 의원은 보건의료인력 지원법에서 업무조정위원회 설치를 추진한 바 있다. 해당 위원회에서는 술기의 난이도, 그리고 술기의 난이도를 차치하고서라도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의사인지에 대한 여부 등을 논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론 직역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직역 내 이기주의가 개입될 수 있지만 이는 어떤 영역에서나 그렇듯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원회에 노동자 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게 되어 있는데, 의료 구상에 관한 민주적인 논의 구조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으나, 위원회의 전문성 담보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윤 의원은 업무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낡은 의료법에 묶여 물리치료사도, 작업치료사도 병원 밖에서는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을 지적하였다. 김윤 의원은 한국재택의료협회 창립총회에서도 유사한 발언을 하였는데, 김윤 의원이 구상하는 의사를 배제한 재택 의료, 요양, 복지, 재활 체계에서 과연 의료의 질이 유지되고, 돌발적 위험이 관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된다. 또, 재택 의료, 요양, 복지, 재활을 위한 인력 고용 및 연계의 이권화 방지 또한 주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산업별로 형성된 결합독점은 경쟁을 억제하고 소비자를 특정 직역의 횡포 아래 놓이게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민 통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직역 간 이기주의와 이권 세력화라는 정(正)과 반(反)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합(合)의 대안, 즉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권들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제정된 간호법 제12조 제2항에서는 간호사가 환자의 진료 및 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있고 난 뒤에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하여 진료지원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료 및 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의사와 간호사 간의 책임 소재 다툼과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는 의료인 양 측에 억울한 사례를 만들고, 의료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될 경우,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부과한다면, 이미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자연적인 질병 과정에 의해 환자 상태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으며, 의학에도,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에게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의료 행위에는 언제나 일정 수준의 위험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병원에서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의사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잘못된 인과 관계를 부과하여 처벌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의 존재 여부에만 의해 환자의 악화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 환자 상태 악화의 원인이 의사에게 있다고 할 수 없고, 그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고는 더더욱 할 수 없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사망이 병원에서 일어나며, 그 이유는 죽을 위기에 놓인 중태의 환자가 병원에 대부분 이송되기 때문인데, 병원과 죽음 사이의 직접적 인과 관계를 단언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실제 판례에서도 모니터링 기록이 15분간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을 명령하는 등, 과도한 책임과 배상을 부과하여 의사들이 고위험 환자를 회피하게 만들고 있다. 진료지원 간호사의 등장으로 이러한 법적 문제는 더욱 많이, 자주 불거질 수 있다.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및 개정을 통해 의사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책임의 근거를 분명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의료 정책도 미래를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국민통합과 청년세대의 희망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 의료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전 정부의 의료 왜곡 정책은 바로잡고, 새 정부의 의료 정책은 더욱 정교화 해야 한다. 국민 통합과 지속가능한 진짜 성장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새 정부가 대한민국 의료를 보다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