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영 (대한의료정책학교 교육연구처장, 전공의)
일본에서 지역의사제는 의료취약지의 의료 격차를 좁히기 위한 필수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이후, ‘치이키와쿠(地域枠)’라 불리는 지역정원-장학금 결합 모델을 전국 의대의 19% 수준(연 1,700여 명)으로 확대했고, 졸업생에게 9년 의무를 부과하여 지역핵심의료를 담당하게 하고 있다.
2023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보건복지부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지역정원제도로 선발한 의대생이 졸업한 후 대학 소재지에서 의사로 근무한 비율은 2017~2019년 기준 무려 87.9%에 달한다. 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구가 적은 의료 취약지의 경우에도 60~75% 이상이 해당 지역에 남아 의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전문의 취득률도 도심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지원정원제도로 입학하는 학생 중 약 90%가 입학 이전부터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현황이며, 나머지 10% 정도(지역정원 A2 제도)는 입학 후에 지역정원으로 선발되여 졸업 후 일정 기간 의무이행을 부여받고 있다.
일본에서의 후자의 경우와 비슷하게, 한국은 현재 공중보건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입학 후에 해당 장학제도의 수혜자를 선발하며, 장학금 수혜 기간만큼 졸업 후 지역 공공보건 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를 명시 받고 있다. 하지만, 장학금(연 2,040만 원)과 병역·전공의 유예 혜택은 일본 수준의 금전적 매력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2019~2023년 선발률은 총 모집 정원의 절반 (52명/100명) 에 그쳤다.
일본의 A2 제도는 별도 정원을 배치하는 다른 제도와 이탈률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 제도가 활발히 이용되지 못하고 있을까?
지역의사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수성과 제도 배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지역의사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지역의사회, 의학회 등의 역량이 확보되어야하고 가용한 자원 배치가 적절히 되어야 하는데,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러한 요건들을 잘 갖추고 있다.
먼저 지방 정부(거버넌스) 차원에서 보자면, 일본은 의료법 상 지역의료대책협의회에서 각 현의 의사확보계획을 세운다. 그 당연직 위원으로 지역의사회장, 대학병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 4회 이상 배치 및 수련을 협의한다. 지역 출신의 의대생을 어떻게 잘 수련시켜서 적절히 배치할지 ‘지역’ 차원에서 고민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해당 지자체에서 사용해야 할 인력이기에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지역의료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채용, 파견, 심지어 커리어 상담까지 일원화하여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제도적으로는 지역보건의료발전계획을 세우게 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을 지키는 지자체도 없을 뿐더러, 그것을 이행할 행정적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못한 실정이다.
더욱이, 지역의사회의 역량 차이도 명징하다. 일본의 경우, 에히메 현, 나가노 현 등에서는 ‘장학의사 경력개발 모델’을 만들어 지역 의사로서 일하기 시작한 인원들의 현 거점병원부터 벽지 진료소까지의 배치 기준과 그에 따른 경력 개발(수련)을 마련한 바 있다. 지역의사회가 ‘HR’의 중심이 되어 Doctor bank를 운영하고 있는 현도 다수 있다. 또한 의과대학에서 지역정원제도로 들어온 학생들이 지역일차의료, 공공의료에 지속적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체적인 ‘지역사회 실습’ 과정을 추가적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 지역의사제의 성패가 갈린다. 지역 주도의, 지역 맞춤형 제도화와 학생의 교육부터, 정착 후 커리어 설계까지, 지역의사제가 한국에 적절히 잘 정착될 수 있으려면 제도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여러 기반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의지와 더불어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적인 부분이다.
수도권 선호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유독 의료계에 지역의료 확충이라는 압박이 가해지는 것은 의료가 가진 숭고한 가치 때문, 즉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지역의사제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논의될 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나, 제도 자체의 설계와 더불어 제도 ‘주변’의 자원들을 어떻게 배열할지 또한 치열하게 논의해야 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