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형준 (대한의료정책학교 공보처, 의대생)
새 정부가 출범한 이래,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지역의사제, 지역의대, 공공의료사관학교, 공공병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해당 공약들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기 위한 기반으로서 ‘의대 지역인재 전형 확대’가 먼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정책 역시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 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지역인재 전형이 지역수련, 지역근무로 얼마나 연계되는지, 그 실효성을 검토한 연구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위 공약들은 결국 지역에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을 배치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으니, 그 근본적인 대전제의 타당성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현 의료정책연구원)의 ‘우리나라 활동 전문의의 근무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의의 출신지가 수도권일 경우에 비해 비수도권일 경우, 지방 근무 가능성은 약 2.2배 가량 높았다. 의대 졸업 지역이 비수도권인 경우에는 지방 근무 가능성이 약 2배 높았으며, 전문의 수련지역이 각각 지방광역시와 도 지역인 경우 지방 근무 가능성이 각각 12.51배, 5.97배 더 높았다.
즉, 지방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이 지방 의대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수련 받을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지방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이다. 이에 호응하듯, 202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비수도권 의대 27곳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은 60%에 달하는 높은 규모를 보인다.
교육부도 지난 4월 ‘지역인재 육성 지원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인재전형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방법적인 측면에서 개편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2028학년도 대학 입시부터는 비수도권 의대 졸업 후 지역 정착 의지를 보이는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출신 중·고교를 기준으로 삼는 현재 지역인재전형과 달리, 새로 제시된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내실화 방안에서는 지원자의 지역 정착 의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지자체와 대학 측에서는 선발된 학생에게 장학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졸업 후 ‘지역의사제’와 유사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전형 도입 여부는 선정된 지역자치단체와 대학이 협력해 2028학년도부터 자율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인재 전형의 예상되는 첫 번째 쟁점은 의무조항이다. 일본의 ‘지역정원제도’는 지역의대의 별도 전형을 통해 선발되며, 그 대상은 지역 출신 학생이나 지역의료에서 일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학생이다. 해당 학생들은 장학금을 지원받아 의사로 육성하게 되어, 졸업 뒤에는 9년간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장학금을 반환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지역인재 전형을 지역 수련/근무 의무조항과 결부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거주이전·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제 시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만약 근무 지역, 연수에 대한 의무조항을 삽입하려면 의료법 제9조을 개정해 국가시험을 분리하고, 의사 면허를 분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비슷한 의무복무 요건을 가진 의대 군 위탁 제도를 살펴보았을 때, 어설픈 의무복무제는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에 따르면, 의대 군 위탁 교육 제도를 통해 사관학교에서 위탁 군의관으로 선발된 의사 42명 중 32명(76.2%)이 지난 달 기준 군을 떠났다. 14명(33.3%)은 의무복무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전역했다. 지역인재 전형을 지역의사제 등의 의무조항과 결부해 도입할 경우, 의대증원으로 인한 새로운 의정갈등을 촉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면허를 확실하게 분리하고 실효성을 고려하여 의무복무 기간과 지역, 불이행 시 불이익 등에 대한 조항을 의료계에서 선제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두 번째 쟁점은 지역인재 전형 확대를 통해 달성하려는 지방의 의료기관과 의료인력의 분배 규모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의료기관과 의료인력뿐만 아니라 환자 또한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43개 상급종합 병원 중 50% 이상이 수도권에 분포해 있고, 서울에는 전국 의사 인력의 28%가 분포해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애초에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에 따라 의료 공급 또한 수도권에 집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역의 인구가 늘면 의료기관과 의료인력 역시 지역에 모이겠지만, 그 역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현재 지역의 상황이 ‘의료 공백’ 상태인지 ‘의료 불만족’ 상태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역의료 역량과 원정 의료 이용 동기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2023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환자 1520만3566명 중 633만3594명(41.7%)이 서울 거주자가 아닌 다른 시도 거주자이다. 이는 현 상황의 원인이 환자 거주 지역 근방의 의료기관 수 부족보다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의 질에 대한 환자의 주관적 불만족에 의해 야기되었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환자는 전문지식이 부재하기에 의료의 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특수한 성격의 소비자이고, 그래서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지역에서 충족 가능한 의료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불만족과 불신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지역에 아무리 많은 공공병원을 세우고 지역의사제 의사들을 채워놓더라도, 그래서 객관적인 지역 의료의 질을 아무리 높이더라도, 그것을 평가할 수 없는 소비자들의 주관적인 불만족을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충족되지 않을 환자의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 정책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현재 수도권 의료에 대한 지역 주민의 수요가 지역에서 대응 가능한 의료인지 여부를 가려서, 지역마다 ‘정말’ 부족한 의료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전수조사가 먼저이다. 사실 더 좋은 해법은 지역별 의료 이용 제한인 진료권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지역 완결적 의료 체계를 구축하려면, 우선 해당 지역에서 의료를 이용하겠다는 수요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2023년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주민등록 총인구 5132만명 중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727만 명으로, 총 인구의 92.1%가 도시에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가 거주하는 비도시지역에 공공병원을 세우고 지역인재 의사들을 많이 뽑아서 의무복무를 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가까운 광역시, 도 중심 의료중심지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대안, 이를테면 교통 편의성을 증진시키거나, 교통 바우처를 제공하는 등의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료계는 의대 지역인재 전형 확대와 이로부터 비롯될 지역 수련, 지역 근무 안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의료인이 지방에서 많이 생활할수록 향후 전문의로서 지방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지역인재 전형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이 효과 자체에 반박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정치권과 대중을 설득하기에 적절치 못한 전략이다. 의료계가 집중해야 할 논의는 어느 정도 ‘지역’까지 ‘얼마나’ 의료기관과 의료인력을 늘릴 지, 그 규모이다. 모든 지방, 농촌, 벽오지에 의사가 많아야 한다는 식의 시민사회의 주장과 정치권의 호응에는,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적절히 효율적으로 분배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실종되어 있다. 한정된 보건의료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고자 할 때, 우선적으로 공공병원을 신규로 설립하여 치료 기반 ‘지역의료’를 시행하려고 한다면, 이 방안이 기존 일차 의료기관의 예방 기능 강화 방안보다 선행되어야 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 이를테면, 현재 HIV/AIDS에 관한 재원은 치료 영역에 집중되어 있지만, 콘돔 사용 등 예방 영역 투자의 공중보건 효과가 비용은 적으나 효용이 더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현재의 재원 사용 방침이 효용이 더 크다는 근거가 부족하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의 지역의료 논의가 ‘치료’에만 집중되어 있고, 중증 응급환자를 사전에 줄일 수 있는 지역 일차의료의 강화가 빠져 있는 점이 아쉽다.
두 번째로, 현재의 지역의료 정책논리는 기존 의료 체계 강화 방식보다 지역의대 및 공공병원 설립 효용이 크다는 사실을 논증해야 한다. 지역의대를 세우고 지역의사를 교육/수련시켜서 공공병원에 투입하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과 비용이라는 한정된 자원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의료집중지로의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권역외상센터를 강화하거나, 중증환자의 이송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이 더 효용이 높을 수 있다. 자원의 투입에 있어 ‘지역에 병원이 없어 불편한 사람’을 ‘미래에 비효율적 자원 배분, 사회간접자본의 운용으로 죽게 될 사람’보다 우선하는 것은 당연하게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며, 정신의 오류에 가깝다. 이러한 정신의 오류로 현재에 자원을 다 적절치 못하게 소모하면 미래에 그 자원을 응당 배분받았어야 할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지난 5월, 당시 이준석 대선후보가 성남시의료원을 찾았을 때 비닐도 벗기지 않은 침상들이 즐비했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이는 지금 당장 우리가 현실에 당면한 문제이다.
의료계는 이러한 지역 의료에 대한 허상과 논리적 취약점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지역의료를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본인이라면 지방을 가겠는가”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의사도 인간이니만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가 의사에게 원하는 역할과, 의사가 의사를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은 그 너머까지 뻗어 있다. 협의를 거부하며 품위를 지켰다고 자축하면 장차 의사를 옥죄는 법안만을 더 만들어낼 뿐이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논의 협의체에 참여하여 의사가 지방에서 의료를 행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