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 (대한의료정책학교 공보처장, 전공의)
대한민국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대 위탁교육 제도“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의료인들마저 그 존재를 잘 알지 못할 만큼 통상적 인지도가 낮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본래 군 측에서 부족한 전문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장기 군의관 양성 프로그램인 ‘의대 군위탁 교육’은 현 상황에서는 애초의 취지가 많이 퇴색되었기도 하다. 국민의힘 강대석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대 군위탁 제도를 통해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수련을 한 뒤 10년의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고 곧바로 전역하는 군의관이 무려 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세금으로 지원된 의대 교육을 무상으로 받고 인턴·레지던트 기간에는 400만 원에 가까운 월급까지 추가로 받는 위탁교육제도를 이용하여, 입시경쟁 없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전역하여 개원하는 경우들은 종종 ‘먹튀’라고 표현되기까지 한다. 군 병원에서 필수과를 선택하는 군 위탁생은 전체의 20%에 불과할 정도여서, 최근 군위탁 제도는 ‘의대 교육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편법’이라 불리고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국민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군 위탁 제도를 통해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한 그들의 선택 그 자체가 위법하다고 지적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안팎에서 ”군위탁 교육 제도“를 비판하며, 이를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절차적 정당성과, 선의에 대한 왜곡이 바로 그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는 결국 형평성 문제로 귀결된다. 군 위탁생은 일반 수험생과 달리 간소화된 내부 전형과 면접만으로 명문 의대에 별도 정원으로 진학할 수 있다. 게다가 입학금, 등록금 등 학비와 급여까지 국가가 전액 지원하며 전문과목 선택조차 일반 인턴들과 달리 군 위탁생들끼리 별도 정원으로 경쟁하게 된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더 치열한 경쟁을 거쳐 의대에 진학하는 반면, 군위탁생은 상대적으로 쉬운 절차만을 거쳐서 미미한 경제적 부담만을 갖고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해당 제도는 사회적인 형평성을 크게 무너뜨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선의에 대한 왜곡이다. 군 위탁 제도 본연의 취지는 직관적이다. 군 병원 필수 진료과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장기 복무할 군의관을 양성하기 위해서이다.
2020년 의정갈등 당시, 정부 측에서 의사들을 ‘공공재’로 표현하여 갈등이 다소 감정적으로 격화된 적이 있다. 의사 한명을 육성하기 위해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의미이지만,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의사들의 의료 서비스는 개인의 노동력과 전문성에 기반하므로 비배제성 비경합성 공공재의 속성과는 분명히 구별되며, 의사의 교육, 수련, 개업, 취업, 의료행위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육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 위탁생은 다르다. 그들은 온전히 국가의 지원으로 양성되며, 향후 10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별도로 양성된 인력이다. 그들이 공공적 역할 수행을 소흘히 하고, 80%가 공적 결핍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전역하여 민간시장에서 수익활동에만 전념한다면 제도 그 자체의 순수성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사회의 후생을 감소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군 위탁제도와 비슷한 이유로 사회적 저항에 크게 부딪쳤던 것이 바로 2020년 공공의대 신설 정책이다. 당시 정책에 의거하면, 공공의대는 의료 취약지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여 법적으로 정해진 의대 정원과 별개의 별도정원으로 선발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시/도별 선발 후 학비를 전액 지원받으며 장학금 지원 기간만큼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하게 될 것이었다. 건강권이 헌법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공공의대 정책 또한 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충족하기 위해 시행된 국가정책중 하나이다.
공공의대 정책이 좌초된 가장 큰 이유는 선발의 공정성, 즉 사회적 형평성을 저해한다는 것이었다. 시도지사 추천 등을 반영한다는 선발과정 상 정치적 개입이 우려되어 공정치 못하게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결과 또한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의무복무기간이 최대 5년이지만 인턴·레지던트를 마치면 이미 의무복무기간을 다 채우게 되어 사실상 의료취약지에 남아있을 유인이 낮기 때문이다. 선발도 공정치 못하고, 과정은 국가가 지원하며, 결과는 효과적이지 못할 것 이라는 예측 하에 공공의대 정책은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최근 민주당이 공공의료 강화 정책중 하나로 ”공공의료사관학교“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공공의료사관학교는 국가 차원에서 공공보건의료 분야의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양성하고 배치하기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의학 교육기관으로, 필수의료 분야에 특화된 의사를 양성하며 의료 취약지 및 민간에서 키우기 어려운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려고 한다. 기시감이 들 만큼, 앞에서 살펴본 군 위탁제도, 그리고 공공의대와 결이 아주 비슷하다. 정말 공공의료 강화를 통해 국민들의 Health Care Needs를 충분히 충족시킬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전술한 제도들과 달리 공공의료사관학교가 사회적 합의 속에 제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1)정책의 작동원리와 2)그 대상이 되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분석이 필요하다. 정부의 욕망은 ”공공보건의료 분야의 인력 양성”이지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의료공공성 강화”일 것이다. 하지만 현제 제안된 공공의료사관학교제도는 제도 도입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정부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구조적 어려움에서 기인한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공공의료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 공공의료 인력양성을 기존 의료인력 양성과 구분해 공공의사와 일반의사를 병렬적으로 동시에 두는 것은 구조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또한 의과대학 졸업 후 자유로운 직업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이 기본값인 상황에서, 그 선택권이 없는 채로 공공의사가 될 것을 결정하고 유지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졸업 후 의무근무를 전제하여 공공의사로의 삶을 일정부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은 개인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역설적으로 공공성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하는 기존 의사들이 공공의료를 분리해 생각하게 되어 공공의료에 대한 참여를 주저하고 공공의료를 오로지 공공의대 졸업생만이 행하는 의료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예산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공공의료사관학교 설립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학생들에 대한 지원비용, 기초의학 교수진 확보 및 진료 의료진 확대에 소요되는 비용 그리고 공공의료원을 상급종합병원으로 기능하게 하기 위한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2022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에 대한 예산이 약 2조 1천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이러한 예산은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필요한 액수이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담보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함께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근무환경의 고려까지 필요하다. 좋은 인테리어나 좋은 컴퓨터 같은 단편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15년 발표된 “지방 및 원거리 지역에서 의료인력 유치를 위한 맥락적 요인”에 관한 논문에 의거하면, 지역에서 의료인력을 유치하려면 근무 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방안과 전문가로서 역량개발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근무환경에서 의무근무를 지속하게 되면, 기간을 채운 후 해당 지역을 이탈하게 되며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다.
고로, 바람직한 정책실현을 위해서는 공공의료사관학교를 만들려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질문해보아야 한다. 제도 도입의 근본적·궁극적 취지가 건강평등권 실현을 위한 의료불균형의 해소라면, 정부는 이를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방안을 채택하여 해당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다수의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아주 신중하게 답을 내놓아야 한다.
먼저, 학생선발의 투명성과 절차적 타당성을 높여야 한다.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 배분하고 적절한 역량을 갖춘 학생을 별도의 평가체계로 선발해야한다. 특히 공공의료에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와 헌신 의지가 큰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 지역에서 충분한 거주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취지에 부합할 것이다.
두 번째로 기존의 의학교육과정이 “공공의료-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예 새로운 제도가 신설된다고 해서, 공공의료를 공공의료사관학교 졸업생들만의 전유물로 두고 낙인처럼 여겨져선 안 된다. 학생 단계에서 공공의료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노출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임상실습 및 공공의료 분야의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의학교육에서 동기부여에 관해 Brissette와 Howes는, 내적 동기부여는 변함이 없고 강력하며 지속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외적 동기부여는 외적 보상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보상이 계속 높아지지 않는다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였다. 즉 내적 동기부여를 키우기 위한 자기주도학습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교육학적인 면에서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과대학 기본의학교육과정 중 공공의료 및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교과과정을 통하여 자기주도적 학습경험을 높이고 이를 위한 공공의료 인력양성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학생들로 하여금 의료의 사회적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교과과정 개발이 필요하다. 2023년 발표된 ”의료시스템과학의 개념과 교육 필요성 고찰“에 따르면 의과대학 교과과정인 2년의 의예과와 4년의 의학과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더군다나 의학지식이 팽창하는 속도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더욱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여기에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교과과정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KAMC는 의과대학 교과과정을 2+4가 아닌 6년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MPH(Master of Public Health)과정과 같은 심화과정과의 연계를 용이하게 하는 것 또한 의학지식 습득뿐만 아니라 다층적, 다각적 차원의 의료를 이해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공공의료사관학교의 학생선발과 배치에 대한 정책적 목표는 굉장히 직관적이지만, 막상 정책의 작동원리는 그렇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의료계를 대척점에 둘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투명하게 학생을 선발하고, 공공의료-친화적인 의학교육과정을 개발하며, 학생들이 사회적 문제를 본인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공의 영역에서의 의술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면 내인적 동기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게다가 해당 내용은 공공의료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의과대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공공의료는 공공의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의대 졸업생들이 관심을 갖고 하나의 진로로서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국민 건강권 수호와 공공의료강화라는 명제는 사회적 합의를 이미 마쳤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힌트를 ”군 위탁교육 제도“,”공공의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